20년도부터 회고를 쓰고 있다.
작년 회고를 다시 보면서도 매년 쉽지 않다.
2월
30년 계획
올해 초에 30년 계획을 세웠다.
작년부터 몸이 좋지 않았고, 쉽게 무기력증에 빠지곤 했다.
원래라면 퇴근하고 블로그를 쓰거나, 게임을 하는 날이 많았지만
점점 집에 도착하면 무기력하게 누워 있는 날이 늘어갔다.
몸이 아파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몰라도
이 무기력함이 나아지길 바랐다.
병원에서 무기력증을 이야기해도, 크게 도움받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러던 중 직장 동료가 30년 계획을 세우는 것을 보았다.
계획을 세우고 나면, 최소한 뭘 할지 몰라 누워있지는 않을 것 같았다.
30년 계획 시작은 다음 4가지 질문이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나는 무엇을 잘하는가,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어떤 것을 하고 싶은가.
답변하기 어려웠다.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어떤 것을 하고 싶은지는 있었다.
컴퓨터를 하고 살 것 같았고, 예전부터 교수를 하고 싶었다.
교수가 되고 난 이후에 대해서 고민했다.
인생의 난도를 낮춘다거나, 이뤘을 때 행복할 것 같다는 거창한 목표를 두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도전해 볼 만한 것,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들이어도 괜찮겠다.
꿈은 크게 지르는 거라고, 튜링상, 필즈 메달을 목표로 잡았다.
30년 후 튜링상이라고 하니, 생각보다 바빠 보였다.
당장 튜링상을 받기 위해 어떤 것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지 모르니 일단 10년만 잡기로 했다.
10년 후에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석사든, 박사든 학위가 필요할 것인고, 내 집도 있으면 좋겠다.
집 한편은 내 연구를 위한 서재로 만들 거다.
연구 분야는 뇌 과학에서 영감을 받아볼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30년 후 튜링상, 10년 후 학위와 내 집이라는 목표를 세웠다.
6월
맥주
올해는 맥주를 많이 못 마셨다.
작년 마지막 맥주가 65번이었는데, 딱 10캔 정도 더 마셨다.
운동을 시작하기도 했고,
올 초에 다녀온 건강검진에서 요산 수치가 높게 나온 것이 컸다.
다행히 가을에는 다시 정상 수치로 돌아왔다.
올해는 아사히 슈퍼 드라이가 유행을 많이 탔다.
당시에는 일본에서 산 맥주를 마시고 정말 마음에 들었는데,
서울에 들어온 후 마시려고 보니 매번 품절이어서 마시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요즘은 좀 다시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믿고 마시는 볼파스, 부담 없는 베어 비어 모두 만족스러웠다.
내년엔 정말 100번 찍어본다.
11월
마포고등학교 연사
22년 당곡고등학교, 상명대학교에 이어
23년에는 마포고등학교에 다녀왔다.
마포고등학교에는 고등학교 3학년 수학 선택 과목에 인공지능 수학이 있는데,
매달 현직자 1인을 초대해 업계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나는 지인을 통해 연락받았고,
생성 모델을 주제로 강연에 다녀왔다.
고등학생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인공지능 수학 시간에
제곱 오류, 경사 하강법 등을 배운다고 한다.
실습하고 과제는 엑셀로 많이 하나 보다.
강연에서는 당곡고등학교 때와 비슷하게 일상에서 딥러닝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이야기했다.
단순 생성 모델만 아니라 인식이나 추천 등의 이야기도 나누었다.
이전에는 음성이나 영상 합성을 했다면,
현재 회사에서는 LLM을 하는 만큼, 언어 모델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다.
이후 질의응답 시간은 비슷했다.
대학 진학 준비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실제로 이런 수학 과목이 인공지능을 업으로 삼는 데 도움이 되는지
수능이 막 끝난 시점에 만난 2학년 친구들인 만큼,
조금은 가벼우면서도 미래에 대한 걱정을 시작한 모습이 보였다.
이번 역시 담당 선생님께서 오히려 질문을 더 많이 하셨는데,
연봉만큼 가치를 정말 창출하고 있다 느끼는지
정말 일반 지능을 모사하거나 구축할 수 있을지, 전뇌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
다양한 질문을 주고받았다.
회사로 복귀하는 길에는
내가 정말 그만큼 가치를 창출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이리저리 많이 했다.
여행
올해에도 여행을 많이 다니려 했다.
생각만큼은 못 갔지만 그래도 분기에 한 번은 다녀왔다.
4월에는 제주에 다녀왔다.
가족과 함께 다녀왔는데, 예상보다 좋은 시간 보내고 왔다.
줄곧 혼자 여행을 다녀오곤 했는데,
부모님께서 먼저 여행 제안을 주셔서 다녀왔다.
비행기 예약은 내가 진행하고,
숙소는 부모님이 내셨다.
여행 코스도 미리 정해놓지 않고, 그때그때 괜찮아 보이는 곳으로 갔다.
이것저것 많이 보기 위해 나다니는 여행보다는
좋은 곳에 가서 여유 있는 시간 잘 보내고 온 것 같다.
해외로 나간다면 이러기 어렵겠지만,
제주도라 가능했던 것 같기도 하다.
바다에 갔을 때,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걷고 있었는데
어떤 분께서 갑자기 나를 부르더니,
사진이 너무 좋아 찍게 되었다고, 물어보지 않고 찍어 미안하다고 하셨다.
괜찮다면 에어드랍으로 보내줘도 괜찮겠냐고
너무 신기한 마음에 사진을 받았는데,
정말 너무 잘 나와서 감탄했다.
7월에는 연례 행사로 부산에 다녀왔다.
좋아하는 술집에,
좋아하는 숙소에서 잘 쉬고 왔다.
항상 느끼지만 해운대의 바다가 너무 좋다.
파도 소리도 좋고, 배경도 너무 좋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삼성에서 지냈다.
정말 크리스마스 예약은 늦어도 11월에는 해야 하더라.
이후에는 자리도 없고, 가격도 비싸 부담되었다.
올해는 여행도 많이 못 다녔기에,
이번 연휴에 많이 쓸 생각으로 다녔다.
압구정의 스시 히노와에 다녀왔는데,
첫 게살 요리가 너무 시어서 걱정이 많았다.
전복 요리도 예상보다 비렸다.
이후에 스시가 나왔고, 걱정과 달리 눈이 번뜩였다.
감칠맛이 입에 맴돌았고, 원물이 신선했다.
특히 참치 원물이 역대급인 듯 보였다.
흰살생선도 잘하고, 사케와도 어울려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크리스마스 잘 쉬고 왔다.
Lionrocket
1월
Meverse
22년 VeryMe 개발 이후 회사는 또 다른 제품을 고민했다.
VeryMe가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위해서는 생존력이 필요했고,
이를 위한 캐시카우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생성 업계는 Personalization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Prisma.ai의 Lensa가 남미에서 AI 아바타를 통해 거금을 쓸어 담았다는 것이다.
사용자가 자신의 이미지를 제공하면, 개인화된 생성 모델을 서비스하는 방식이다.
판타지 세상 속의 내가 나오기도 하고, 미화된 내가 나오기도 한다.
이후 유사한 서비스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특히 스노우와 같이 촬영 및 편집 어플을 주제품으로 하는 회사들이 많이 참전했다.
우리는 시장의 흐름에 몸을 맡겨보기로 했다.
단타성 서비스로 단기 수익을 누적해 보겠다는 전략이었다.
대부분의 제품은 이미지를 전달하면 몇 시간 후에야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StableDiffusion과 같은 생성 모델에 사용자가 제공한 이미지를 추가 학습하는 방식인 듯 보였다.
당시 GAN은 다양한 이미지를 생성하는 것에 한계가 있었고,
Diffusion을 사용하더라도 Few-shot generation으로는 객체 보존이 어려웠다.
DreamBooth[arXiv:2208.12242]가 나온 지도 얼마 안 되었고,
10장에서 20장의 이미지 요구량과 시간 단위 지연을 가정한다는 것도 Finetuning임을 시사했다.
상대사의 기술 스택은 추정하였지만, 여전히 문제가 있었다.
안 그래도 Diffusion은 생성 시간이 긴데,
학습 리소스까지 서비스가 감당하기에는 GPU 사용량이 부담되었다.
우리는 노선을 틀었다.
학습 없이 개인화된 생성 모델을 만들기로 하였고,
입력으로 받을 이미지의 수도 줄어들길 원했다.
또한 단타성 제품이기에 리서치보다는 기존의 제품을 재활용하길 원했다.
AI 연구팀과 기술 프로덕션팀은 새로운 CRO 체제 아래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아바타 컨셉에 맞는 이미지 후보군을 선택하고,
Few-shot generation이 가능하도록 내재화되어 있던 생성 파이프라인을 재활용했다.
그렇게 나온 서비스가 Meverse이다.
Few-shot generation이기에 실제 인물과의 유사도는 타사에 비해 떨어졌지만,
20장 정도를 요구하는 타사와 달리, 1장으로 이미지를 합성할 수 있다는 점으로 차별화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게 정말 사용자에게 매력적인 차별점이었는가 하는 고민이 들기도 한다.
정말 사람들이 스노우를 20장이나 넣어야 해서 사용하지 않는 걸까,
정말 기다리는게 문제인가 하는 것들이다.
예상보다 사람들은 AI 생성물이 오래 걸린다는 것을 쉽게 이해했다.
스노우 등 AI 기업들이 지연에 대한 인식을 많이 완화해 주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물 유지와 다양한 컨셉, 미화에 더 집중해야 하는 것 아니었을까
시장의 흐름에 맡긴 단타성 제품이었던 만큼,
여전히 결과물의 품질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미버스는 23년 상반기까지 서비스되었고, 이후 조용히 종료되었다.
2월
음성팀 해체
나는 19년도 9월, 음성 합성 연구원으로 라이언로켓에 합류했다.
21년도 4월까지 전임 연구원, 이후 음성 합성 연구팀장으로 있었다.
21년 10월 영상 합성팀이 신설되었고,
22년 VeryMe가 회사의 주요 사업이 되며 음성 합성팀은 축소되었다.
23년 2월 나를 제외하고 2명으로 구성되어 있던 음성 합성 연구팀은
1인의 산업기능요원 종료와 퇴사가 결정되며 1인 팀으로까지 축소되었다.
On-air studio의 관심이 줄어들며 음성 연구팀은 할 일이 더욱 줄어들었다.
내부적으로 진행하던 음성 변조, Voice conversion에 대한 연구 성과는 인정받지 못하였고,
결국 음성 합성팀은 해체 수순을 밟게 되었다.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처음으로 입사하였고, 처음으로 팀장을 맡은 팀이었기에 그 끝을 보는 것이 어려웠다.
음성 연구를 더 잘해야 했나,
더 열심히 경영진에 PR하여 팀을 유지해야 하나,
사업에 기술이 사용될 수 있도록 더 달려야 했나 여러 생각이 들었다.
21년도부터 함께하던 음성 연구원은
영상 합성 연구팀으로 편입되었고, 3D 연구를 담당하게 되었다.
전혀 다른 필드임에도 남아 있어 주었고,
그 이후에도 최선을 다해 일을 도와주었다.
정말 너무나도 감사한 팀원이었지만,
퇴사를 확정 짓게 되었고, 결국 회사를 떠났다.
이제 음성팀은 말 그대로 유산이 되었다.
기술 전환
Diffusion 계열 Text-to-Image 모델이 업계의 흐름이 되는 것은 자명해 보였다.
OpenAI의 DALL-E에서는 확신하지 못하였지만,
Stability AI의 StableDiffusion(이하 SD)이 오픈소스로 풀린 이후의 흐름은 달랐다.
LoRA[arXiv:2106.09685] 등 LLM에서만 보이던 Finetuning 방법론이 SD에서 활용되기 시작했고,
이후 ControlNet[arXiv:2302.05543]까지 등장하며 이미지 생성 모델의 Controllability도 확보되었다.
사업적으로 가장 문제였던 합성 결과물의 불확실성이 완화되어 가는 것이다.
연구팀은 전환이 필요했다.
Diffusion 계열 모델에 대한 팔로업이 필요했고, 이를 충분히 실험해 보며 감각을 잡아가야 했다.
CRO님과 나는 이에 공감하였고,
1달간의 전환 기간을 가지기로 경영진과 합의하였다.
1주일간은 매일 세미나를 운영했다.
오전 2시간에서 3시간, 연구팀원 모두가 리뷰한 페이퍼나 주제에 대해 발표하고 질의응답 하는 시간이다.
오후에는 오전에 나온 페이퍼를 구현하거나 테스트해 보고,
이듬일 오전에 경험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디퓨전 모델의 시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왜 Score matching인지, 어떤 이유에서 Score matching이 발생했는지,
Langevin dynamics 얘기는 왜 나온 것인지,
그래서 현재의 Diffusion 모델은 어떻게 작동하는지 등 다양한 주제를 다뤘다.
이후에는 Inversion에 관한 이야기, Feature map에 대한 분석과 Few-shot 합성 등
다양한 이야기가 오고 갔고, 연구팀은 그렇게 Diffusion 모델에 대한 감을 잡아갔다.
그때 자료는 유실되었지만, 언젠가 블로그에 한번 정리해야겠다.
3월의 신제품을 위한 준비는 끝났다.
3월
Pokeit.ai
단타성 제품 Meverse 이후 우리는 조금 더 긴 호흡을 가져갈 캐시카우를 준비했다.
다양한 회사로부터 영감을 받았고,
그 중에서 뤼튼[wrtn.ai]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뤼튼은 Large Language Model(이하 LLM)을 자체 생산하는 회사가 아닌 듯 보였다.
LLM은 일반 사용자에게 나타난, 기존에는 없던 새로운 도구에 가까웠고,
뤼튼은 이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포장하여 사용자에게 새로운 편리함을 제공하려는 회사로 보였다.
Foundation Model이라 부르는 대형 모델은 학습과 추론 모두에 다량의 자원을 소모하기에
스타트업이 쉽게 도전할 만한 영역이 아니었고,
이를 사용자에게 적절한 가치로 포장하여 제공한다는 뤼튼의 아이디어는 정석에 가까웠다.
우리 또한 이에 공감하였고,
LLM이 아닌 StableDiffusion 계열 모델을 활용하여 어떤 가치를 만들지 고민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git+AUTOMATIC1111/stable-diffusion-webui]를 서비스로 재구성해 보기로 하였다.
SD를 아는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생성하기 위해 여러 가지를 알아보고,
직접 WebUI 환경을 구축하여 이미지를 생성해 왔다.
하지만 일반 사용자가 이를 따라 하기는 쉽지 않았고,
간단한 광고용 이미지, PPT용 이미지 등 수요에 따라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는 서비스를 구축하고자 했다.
그렇게 우리는 StableDiffusion 기반의 Pokeit.ai를 제작했다.
당시 얼룩말 세로의 탈출 사건과 함께,
세로를 주제로 합성한 이미지들이 바이럴을 타며 초기 유입에 도움이 되었다.
이후에는 합성에 대한 크레딧을 BM으로 하여 사업을 이어갔다.
단순 이미지의 스타일만 아니라, 특정 객체를 고정하기 위한 여러 LoRA 모듈에 대한 테스트도 이어갔다.
꽤 괜찮은 BM으로 보였고, 기대되는 제품이었다.
갈등
회사에서는 또 다른 제품을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초기 TTS 오디오북, On-air studio, VeryMe, Meverse, Pokeit에 이은 6번째 프로젝트였다.
VeryMe를 시작으로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4번째 제품이다.
VeryMe가 예상보다 리텐션 유지와 수익화에 어려움을 겪자,
새로운 제품을 태핑 해봐야 한다는 결정이었다.
이것이 기술의 문제로 합성 품질을 확보하지 못해 발생한 일인지,
정말 PMF에 맞는 제품이었는지, 그를 위한 운영에 문제는 없던 것인지 분석되거나 팀에 공유되지 않았다.
여러 번의 시도로 PMF를 찾는다는 점에서는 동의하였으나,
이 정도로 빈번한 태핑이 정말 PMF로 가는 길인지, 조금 더 신중할 것은 없었을지 여러 고민이 들었다.
연구팀에서는 기술 개발이 끝나면 제품이 피봇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피봇의 빈도가 잦다는 불만이 있었고, 이를 해소해 주는 것에 매니징 리소스가 많이 투자되었다.
경영진과 연구팀 사이의 갈등은 깊어졌다.
연구팀과 경영진은 서로 신뢰하지 못했다.
연구팀은 경영진의 경영 능력을, 경영진은 연구팀의 연구 능력을 믿지 못했다.
경영진은 연구팀이 사업에 도움 될 결과물을 만들지 못한다 생각하는 듯 보였고,
연구팀은 결과물을 만들어가도 이해하지 못하고, 활용하지 못한다 생각했다.
기술 프로덕션팀과 관련 경영진이 직접 연구에 나섰고,
연구팀은 주제품 연구에서 배제되었다.
6월
Genvas
그렇게 3월부터 준비한 신제품은 Genvas이다.
우리나라 웹툰 시장은 굉장히 노동 집약적이기에,
생성 모델을 통해 웹툰 제작을 어시스트할 수 있다면 제작사들의 지불 의사가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경영진은 캐릭터를 곧장 학습하여 여러 자세에서 재현하는 연구를 수행했고,
연구팀은 그 과정을 세분화하여 단계별 연구를 수행했다.
매일 오전 스크럼 과정에서 작일 진행한 실험과 결과를 브리핑하고,
오후에 진행할 실험의 방향성을 설정하고 분배했다.
연구팀은 빠른 시간에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단계별 결과물의 정확도는 높았고, 곧장 사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보였다.
하지만 우리의 결과물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많은 양의 테스트가 이뤄졌음에도, 적극적인 세일즈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감각을 받았다.
경영진이 진행한 연구는 MOU로 이어졌고, 이는 사내에 홍보되었다.
연구팀의 결과물은 묻혔고, 능력 없는 부서로 비쳤다.
7월
정리해고
7월 14일 정리해고 통보를 받았다.
19년 합류 이후 3년 11개월이었다.
끝이 좋지 않았다.
웃으며 끝내지 못했고, 상처만을 남겼다.
하루아침에 연구 부서에서 2인을 제외한 전원이 해고되었고,
연구 부서는 해체에 가까웠다.
인수인계는 없었고, 정말 하루 아침에 나의 4년을 놓고 나와야 했다.
이제 우리는 없었다.
서로의 길도 응원하지 않았다.
해방감, 배신감, 억울함 등 많은 감정이 들었다.
해고당한 사람들과 낮술도 하고, 집에 들어가 멍도 때렸다.
퇴사 후
마음을 추스른 후 1달간 이직 준비와 함께 휴식 시간을 가졌다.
항상 좋은 회사를 정의하는 것이 안 좋은 회사를 정의하는 것보다 어렵다.
다음 회사가 더 나을 것이라 기대할 수 있는가,
그렇게 하기 위해 나는 입사 과정에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많이 고민했다.
이직의 기준으로 몇 가지를 세웠다.
1, 순이익이 있는가
2, 대표가 HR과 기업 문화에 관심이 있고, 적극적으로 움직일 의지가 있는가
면접에서 이를 확인하고 나면 최소한 같은 문제는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고 나면 새로운 문제는 그때 고민하기로 했다.
이력서와 경력 기술서도 업데이트했다.
회사에 다녔기 때문에 할 수 있었고, 창업 초기 멤버였기에 할 수 있었지만,
반대로 이 회사에서만 할 수 있었을까
더 아프지 않고 할 수는 없었을까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후일담으로 6월 마지막으로 진행했던 연구팀 성과는 퇴사 후에야 뒤늦게 검토되었고,
결과가 인정되어 세일즈를 준비하고 있단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안타깝다.
하나둘 면접을 보러 다녔다.
생각보다 두 기준을 넘는 회사는 많았다.
경영진과 팀원 사이에 존중과 신뢰가 보였고,
모두가 합리적 판단을 위해 데이터를 가지고 이야기 나누었다.
내가 대표였다면 저렇게 경영하지 않았을까 하는 회사도 있었다.
면접을 보지 않는 날에는 집 앞 카페에 나갔다.
카페에서 책도 보고, 여유를 가지며 오랜만에 휴식을 취했다.
아침에 일어나 운동을 가고, 저녁에는 카페에 가거나 친구들을 만났다.
건강은 좋아져 갔다.
공황 발작도 없고, 여러모로 몸도 괜찮아졌다.
Theori
8월
입사
2개 회사에 최종 합격했다.
한 곳은 시리즈A 클로즈 단계인 회사로, 비전을 주로 한다.
한 곳은 보안 컨설팅을 서비스하는 티오리[theori.io]이다.
전자는 AI가 중심인 회사이고, 후자는 보안이 중심인 회사이다.
전자는 연구팀원으로, 후자는 신설하는 AI팀의 팀장으로 입사하게 된다.
둘 다 기업 문화에 관심을 가진 대표님이 계시고, 기업을 견인할 매출을 내고 있었다.
다양한 고민을 했다.
엔지니어인지 매니저인지,
AI 중심 회사인지 아닌 회사인지,
기본급여인지 상여금인지,
컴포트 존인지 새로운 도전인지
티오리는 AI for Offensive Security, AIOS라는 부서를 신설하여
AI를 통해 보안 컨설팅을 반자동화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새로운 부서를 창설하는 만큼, 많은 확인이 필요했다.
금방 사라질 부서는 아닌지, 어느 정도 자원의 투자를 고민하는지,
몇번의 실패까지 납득 가능한지 등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마지막 면접 이후, 티오리에 최종 합류를 결정했다.
팀빌딩
8월 16일 입사 이후, 본격적인 팀빌딩을 시작했다.
AI팀은 나와 팀원 하나, 총 2인이다.
연구의 성과와 경영진의 투자가 선순환을 만들기 위해
목표와 로드맵 설정, 빠른 결과를 내는 것이 목표이다.
주니어 위주의 이전 회사 팀빌딩과는 달리,
이번에는 좀 더 빠른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중견급을 찾아 나섰다.
가능하면 3년 이상으로,
보안 전문 인력 1인, 엔지니어 2인, 연구원 5인의 8인 정도 팀을 구상했다.
본격적인 인바운드 문의를 받기 시작했고,
12월 1일까지 빠르게 5인 팀을 구성했다.
내년엔 아웃바운드로 많이 접촉하여,
나머지 인원을 채울 예정이다.
로드맵 작성도 병행하였다.
우리팀의 미션과 비전은 무엇인지, 앞으로 어떤 기간에 무엇을 전달할지 설정하였다.
한번 팀이 고장 나고 나니, 생각보다 존재 의의가 무겁게 느껴졌다.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가 무엇을 하는 팀이고, 앞으로 어떤 것을 할 것인지 명시화하는 게 중요했다.
우리는 보안의 자동화를 연구 개발하는 팀이고,
이를 통해 보안 서비스의 접근성을 높이겠다.
모든 로드맵은 이를 이루기 위해 작동한다.
시스템의 분석, 공격 표면 식별, 위협 모델 생성과 검증, 대응 방안 생성까지
시도할 수 있는 모든 부분을 25년까지 검토해 볼 예정이다.
대표님과 로드맵을 합의하였고, 하나씩 준비해 나가야겠다.
9월
온보딩
9월, 10월은 팀빌딩 및 온보딩 기간을 거치며 LLM과 보안 데이터에 대해 감을 잡아갔다.
음성, 영상만 보다가 자연어를 만지려니 완전히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더군다나 보안을 접은지 꽤 되었다 보니 단어도 생소했다.
가장 먼저 보안 관련 질문에 특화된 QnA 시스템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검색어를 Paraphrasing하고, 구글 서치 엔진 API로 자료를 검색,
질문에 도움이 될 문단을 발췌하여 RAG하는 방식이다.
LLM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On-premise 모델의 실시간성 확보, 최종 데모 제작까지 수행하였다.
아쉽게도 보안에 대한 전문성이 아직은 부족하다 판단하였고,
다음 프로젝트로 넘어갔다.
11월
첫 프로젝트
11월 첫 공식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팀원들과 첫 합을 맞춘 프로젝트였다.
조용하지만 충돌도 있었고, 불만도 있었다.
예상만큼의 결과도 있었지만, 기대만큼의 결과는 만들지 못했다.
다음에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풀 수 있는 날이 있으면 좋겠다.
30년 계획
또 다른 질문은 무엇을 좋아하고, 잘 하는가였다.
당시에는 무얼해도 자신이 없으니, 뭘 잘하는지 모르겠고,
뭘 좋아하는지도 확신이 없었다.
그러다 이번 회사에서 동료 하나가 한 말이 인상 깊었다.
이미 알고 있는데, 인정하지 않는 것 아니냐고.
스트레스 속에서 무뎌져 있던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on2023
올해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처음 이직하고, 창업 멤버가 아닌 직원으로 80명 규모 회사에 입사했다.
AI가 아닌 사업의 AI팀을 신설하고, 두 번째 팀빌딩을 끌어냈다.
매니저로는 증명하고 있다 느끼지만,
Individual Contributor로 아쉬움을 하나둘 확인하기도 했다.
새로운 공간, 새로운 사람들과 일을 한다.
여전히 스트레스가 있지만,
무뎌져 있던 것들이 조금씩 회복되어 간다.
24년은 복학의 기로에 서있다.
복학할 것인지, 회사를 더 다닐지, 대학원 진학을 준비할지,
여전히 고민할 게 많다.
그럼에도 24년은 더 나은 한해가 되었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