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ing

On 2021

On 2021

21년도 한 해가 지났다.
학교와 회사를 병행한 20년도였다면, 21년은 자신과 회사 일의 균형을 맞춘 한 해였다.

올해의 회고는 지난 1년간의 일을 월별로 정리해보려 한다.


1월
라로 - Ablation Study

21년 1월 처음으로 개발 중이던 모델에 Ablation Study를 진행했다.

Ablation Study는 모델의 각 요소를 제거해보고, 대체하며 현상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딥러닝이란 분야적 특성도 있고, 이전까지 연구 방법론에 대한 프로세스가 정립되지 않았었기에
각 요소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중간 표현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Ablation Study는 이를 확인하기 위한 작업이었고,
현행 TTS 모델에 대해 아주 많은 인사이트를 얻어갈 수 있었다.

연구는 텍스트 인코더, 어텐션 메커니즘, 스펙트로그램 디코더로 나눠 진행했으며,
어떤 아키텍처가 발음 문제에 강하고 음질 수준에 도움을 주는지,
각 어텐션 메커니즘이 최종적으로 회귀하는 옵티멀한 선택지가 있는지 등을 알아보았다.

한참이 지나 11월에는 단순 연구 노트의 실험 기록과 정리를 넘어 지식의 형태로 남기길 바랐고,
이에 Wiki를 만들어 각 컴퍼넌트와 품질의 상관관계를 글로 정리했다.

연구 조직에서 활동하다 보면 성공보다 실패의 경우가 많고,
작동 방식이나 구성 요소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 때도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연구 조직은 성과로 가는 길에 체크포인트를 둘 수 있어야 하고,
꾸준히 과정 자체를 결과물로 기록해둘 수 있어야 하는 것 같다.
Wiki와 중간 샘플 공유는 이의 결과물이고, 실패를 성과화 할 수 있는 방법론이었다.


2월
라로 - 모델 배포

19년도 9월부터 대략 1년 6개월의 장정 끝에 처음으로 모델을 배포했다.
가칭 PTv2 모델은 Tacotron을 시작으로 한 우리 회사의 첫 Parallel TTS 모델이었다.
당연히 합성 품질이 이전 같지 않다는 문제가 있었지만,
당시에는 실시간 합성이 가능한 딥러닝 TTS 모델이 필요했고, PTv2는 이에 가장 알맞은 모델이었다.

첫 배포였기에 학습 정량화부터 진행하였다.
추가 튜닝 없이 다양한 데이터셋에서 어느 정도의 품질을 냈는지,
의도한 품질까지 얼마만큼의 데이터셋 규모와 학습량이 필요한지 등을 실험적으로 구하였다.

이는 엔진 제작팀으로 전달되었고,
12월인 지금까지도 PTv2 모델을 가장 기본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후 모델은 프로덕트에서 더욱 다양한 데이터셋과 사용자 입력을 만나며 다양한 버그가 리포트 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버그는 딥러닝 특성상 모델 구성 수준에서 해결하기 어려웠다.
실험적으로 더 많은 데이터를 넣어 결과를 확인하거나,
개별적으로 파라미터 튜닝을 하는 것 정도가 일차적인 해결방안이었다.

의미도 모를 중간 표현을 관찰하는 등 디버깅은 계속됐다.
관찰 도중 중간 표현의 분포가 특정 입력에서 변화하는 현상을 확인했고,
9월에는 이를 모델 구성 수준에서 해결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이후 버그는 1/4 수준으로 줄어들었고, 새로이 모델의 배포를 준비 중이다.
이 외에도 중간 표현을 관찰하여 자동으로 이상을 탐지하는 딥러닝 디버거 개발 등을 앞두고 있다.

딥러닝 모델을 디버깅할 수 없다는 건 이제 옛말일지도 모른다.
연구팀은 주어진 환경에서 문제를 정의하고, 이제 원인을 밝혀낼 수 있어야 한다.
내년에는 이에 대한 프로세스를 확립하고 공유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3월
독립

지난 3월 본가를 나와 교통편이 좋은 곳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원래도 정거장 수만 세면 본가에서 사무실이 멀지는 않았는데,
본가에서 역으로 나가 환승하는 것까지 고려하면 대략 왕복 2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다.
2년 정도는 이렇게 출퇴근했었고, 이는 생각보다 생활 패턴을 망쳐갔다.

지금 회사는 8시에서 11시 사이에 출근하는 탄력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처음에는 9시에 출근해 6시에 퇴근했었는데,
6시의 지옥철을 타고 1시간을 퇴근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피로감을 느끼고 7시 집에 도착, 8시에 저녁을 먹고 나면 8시부터 10시는 낮잠 시간이었다.

낮잠을 자고 나니 밤잠을 늦게 자게 되고, 생활 패턴은 꼬여만 갔다.
늦잠 몇 번에 출퇴근 시간이 늦어지고 나니 퇴근 후 개인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고,
퇴근-저녁-잠-출근의 워크 앤 워크 사이클로만 시간이 채워져 갔다.

감정 상태나 피로감에 대한 충분한 이완 없는 사이클은 번아웃으로 이어졌다.
어떻게든 일을 지속하려면 이를 타파해야 했고, 몇 가지 시작한 생활 습관이 있다.

우선 부모님과 이야기 중이던 독립을 앞당겼고, 교통편이 좋은 곳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자취방에서 사무실은 전철로 10분 거리고, 문에서 문으로 20분 정도면 도착한다.
왕복 시간이 줄어들면서 근본적인 출퇴근 피로감을 많이 줄일 수 있었다.

또 체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근래에는 조금씩 운동을 시작하고 있다.
확실히 운동하고 나면서 낮잠을 자는 빈도도 많이 줄어든 것 같다.

이렇게 생활 패턴이 정상화된 이후로는 8시 출근, 5시 퇴근을 하면서 저녁 시간도 챙겨가고 있다.
기타도 사서 하고 싶던 취미 생활도 시작하고, 온라인 게임이나 저녁 약속 잡는데도 부담이 줄었다.
저녁이 생기고, 감정적 이완이 가능해지니 번아웃도 많이 줄어들었다.


나는 생활력이 꽤 있는 편인 것 같다.

친구들과 독립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도 너는 걱정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밥도 해먹고, 요리도 잘 하고, 청소도 매일 하고 그러고 지내고 있다.
자취방 근처에 밥집이 없는 것도 한몫한 것 같다.

먼저 자취하던 친구들은 외롭다는 이야기도 많이 했었는데,
나는 혼자 있는 것에 크게 외로움을 느끼지는 않는 편이어서 다행인 것 같다.
오히려 내 생활 패턴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고, 모든 상황이 의지 아래 조절 가능하단 점이 너무 좋다.
어쩌면 고등학생 때부터 이어진 결벽의 만족감일 수도 있겠다.

좀 이른 나이에 경제적 독립과 주거의 독립을 이뤘지만, 굉장히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다.

글을 마무리 짓기도 전에 이 문장을 수정할 줄 몰랐다.

겨울이 되니 집에 하자가 많다.
온수가 안 나오고, 후드를 열 때마다 물 폭탄이 떨어진다.
집을 알아볼 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3월에는 온수도 잘 나왔고, 후드는 말라 있었다.

그러던 12월 초, 영하의 온도가 찾아오면서 아침에 샤워하려는데 온수가 안 나오기 시작하고
요리 중에 후드를 열면 결로가 고여 있다가 후두둑 떨어진다.
덕분에 아침마다 샤워를 고민하고, 요리도 여럿 버렸다.

지금 집은 집주인 아저씨가 와서 직접 고치시는데, 차라리 기사를 불렀으면 하는 마음이다.

자취 참 쉽지 않다.


4월
라로 - 첫 단독 연구

모델을 배포하고 난 후의 4월, 해외 진출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연구팀으로 다국어 모델에 대한 요청이 들어왔다.
한국어 데이터셋만 가지고 영어를 말하게 만드는 연구였다.

여느 때처럼 arxivpaperswithcode에 들어가 다국어 모델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회사에서는 병렬 합성 모델을 배포한 이후였고,
애드온과 같은 방식으로 기존 모델 위에 올렸으면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parallel tts의 연구가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기에
대부분의 다국어 연구는 Tacotron 위에서 작동했다.
그마저도 원하는 퀄리티가 아니었고, 회사 데이터셋 환경과 호환이 되지도 않았다.

약간의 힌트와 데이터셋, 모델의 제약만 존재하는 상황이었고,
처음으로 남들이 공개하지 않은 미지의 영역에 발을 딛은 느낌이었다.

이는 굉장한 설렘으로 다가왔다.
첫 개인 연구이기도 하고, 연구자로 유의미한 발자국을 남길 기회라 생각했다.

베이스라인부터 차근차근 시작했다.
Tacotron 기반 다국어 모델에서 필요한 요소들을 적용해 보면서 최초 현상을 관찰했다.
어느 부분에서 문제가 생겼을지 현상과 직관을 기반으로 가설을 세우고
하나둘 실험을 통해 검증해갔다.

처음에는 언어 표현을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떤 방식으로 언어 정보를 첨가해야 할지 고민했고,
이후에는 비언어적 특성을 화자에서 분리해낼 수 있는지, 혹은 이를 모사해낼 수 있는지 등을 고민했다.

시간은 6월 훈련소 가기 전까지 2달 정도로 촉박했고,
하루에 8개 정도의 실험을 꾸준히 돌려 가며 대략 200여 개의 모델을 구성해 보았다.

그 결과가 다음의 영상이다.

2달의 연구 기간, 첫 단독 연구였기에 이 정도 음성은 꽤 만족스러웠다.
parallel tts에서의 비언어적 특성과 정보 전이란 주제로 무언가 발자국을 남긴 기분이었다.
이 모델은 1차 배포가 진행되었지만, 이후 발음 이상이나 음질 문제로 아직 프로덕트에 가진 못했다.

그렇게 6월 훈련소를 갔다 오고, 다른 프로젝트에 우선순위가 돌아가며
다국어 연구는 중단되었다.

이 외에도 연구 프로세스나 기간 산정, 성과 평가 등
연구 정량화에 관한 이야기가 이때를 기점으로 시작되었다.
현재에 연구팀에 공유되고 있는 연구 프로세스라는 문서도 이 시기의 경험을 기반으로 작성되었다.

성과도 만족스러웠지만, 프로세스를 확립하고 정량화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단 점에서도 긍정적이다.

라로 - 연구팀장

19년도 9월, 음성 연구원으로 입사한 이후 1년 6개월 정도의 기간 동안 TTS 모델만을 연구해 왔다.
이후로 여러 인턴과 연구원분들이 왔다 갔다 했지만,
회사 규모는 여전히 10명 정도였고, 팀은 기획-마케팅과 R&D 정도로만 나뉘어 있었다.

그러던 중 4월에 인사팀장님과 연구원을 공격적으로 채용하면서 연구팀의 운영에 수요가 생겼다.
대표님이 먼저 연구팀장의 위치를 제안해주셨지만, 처음에는 할 생각이 없었고, 거절했다.

나는 특성화고를 나와 졸업하자마자 취업한 여러 친구의 고생을 보며
알게 모르게 회사란 존재에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적대감은 내가 연구에는 몰입할지언정, 회사에는 몰입하지 못하게 했다.

지금 보면 창업 초기 멤버로 시작해 2년간 일한 회사에 몰입하지 못하는 것도 아이러니하긴 하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나는 굳이 팀장 자리를 맡을 이유가 없었고
처음에는 그저 연구원으로 자리를 물렀다.


그러던 중 회사에 첫 퇴사자가 나왔다.
회사는 안 믿어도 사람은 좋아하던 나에겐 꽤 충격적인 일이었다.
당시에는 모두가 어렸고, 모두에게 첫 창업이자 첫 직장이었다.
서로에게 너무나도 쉽게 상처를 줄 수 있었고, 그렇게 떠나갔다.

나는 이를 기점으로 최소한 내가 뽑은 사람들은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다.

나는 연구팀의 운영에 다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나라는 필터를 통해 우리 팀원들이 상처받지 않았으면 했다.
강한 피드백이 온다면 좀 더 돌려서 전달할 수 있는 환경이었음 했고,
모두가 서로를 견제하기보다는 으쌰으쌰 하며 시너지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왕 하는 김에 연구자들의 목소리도 전달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당시에는 연구를 중단하고 다른 프로젝트로 넘어가는 일이 허다했다.
왜 이 연구를 해야 하는지 설득할 채널도 없었고,
연구 방향이 사업과 정렬되어 있지 않아 주제를 트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연구자는 연구에 애정을 붙이기 어려운 환경이었고,
동력이 떨어진 후에는 이전만큼 열심히 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대표님을 찾아가 연구팀장 자리를 제안했다.
기술 대표님이 총괄하던 R&D에서 연구팀을 분리했고,
주간 회의에도 참여하여 연구자 대표의 입장에서 왜 이 연구를 해야 하고,
앞으로의 사업 방향성에 맞추기 위해 이런 주제나 연구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팀이 생기니 할 일이 많아졌다.

보다 본격적인 연구 활동을 위해 연구 프로세스를 정립하기 시작했고,
연구 기간에 대한 정량화를 진행했다.

굉장히 막막한 일이었다.
주변 대학원생 형들은 연구 프로세스라는 것이 있냐고 오히려 반문해왔다.
대학원은 이를 논문 쓰기라는 과목에서 가르치고는 있었지만,
프로젝트 단위의 기간이나 리소스 사용량을 정량화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결국 4월에 진행한 다국어 연구를 기반으로 하나둘 기준을 잡아갔다.
한 번의 연구 시도를 몇 개의 실험으로 잡고,
대략 몇 개의 시도 정도에 얼마만큼의 성과 가능성이 있는지 기록했다.

실제로 주간 회의에서의 연구 공유는 이 포맷을 통해 이뤄졌고,
여전히 꽤 유의미하게 들어맞고 있어 신기하다.

정량화가 끝나니 본격적인 매니징이 시작되었다.

내 연구만을 보던 나는 처음으로 타인의 연구를 보고 공유하기 시작했다.
원활한 소통을 위해 연구 포맷을 맞추고,
연구 방향성과 방식에 대한 피드백을 진행하기도 했다.

처음 하는 일이다 보니 굉장히 많은 리소스를 잡아 먹었다.
내 연구를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전만큼 집중하지 못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연구 성과도 내가 책임을 지게 되니 어깨는 무거워져 갔다.

이후 매니징의 부담감은 10월 비전팀 신설과 함께 굴러 나가기 시작했고,
결국 번아웃으로 이어졌다.


5월
오마카세

6월 훈련소 입소가 확정이 나고, 5월 코로나로 못 보던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그 중엔 옥찬호 형도 있었는데, 꽤 오랜만에 만나 스시 오마카세에 가게 되었다.

오마카세를 자주 갈 만큼 잘 먹고 다니는 편은 아니었다 보니
먹으러 가는 길 자체가 설렜던 것 같다.

21.05.22.스시 스미레

21.05.22.스시 스미레

평소에도 회나 초밥류를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었기에 만족도는 하늘을 찔렀다.
나는 특히 청어나 고등어를 좋아하는 편인데,
자칫 비릴 수 있는 생선이지만 산미와 함께 깔끔히 잘 표현해 더욱 맘에 들었다.
참치도 굉장히 맛있었고, 성게알의 크리미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5월엔 특히 매니징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시기라
찬호형의 고민 상담과 맛있는 스시는 훈련소 가기 전 체증을 씻어 내리는 것만 같았다.

훈련소에 다녀온 7월에 한 번 더 오마카세에 들리기로 하며 현실로 돌아갔다.

21.07.11.스시 사토시

21.07.11.스시 사토시

7월엔 사토시에 들렀다.
여기는 처음에 받은 오징어 회부터 굉장한 이목을 끌었다.
해조류와 미소가 올라가 있었는데, 산뜻하면서도 미소의 고소함과 오징어의 식감이 잘 어우러져 있었다.

아귀 간도 이날 처음 먹어봤는데,
성게알과는 또 다른 크리미함과 고소함이 만족도를 최상으로 끌어올렸다.

청어, 고등어 회는 물론 솥밥까지 뭐 하나 놓칠 것이 없었다.

돈 많이 벌어서 세상 맛있는건 다 먹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6월
훈련소

머리를 밀고 훈련소에 다녀왔다.

2월부터 산업기능요원으로 일하면서 한 번은 다녀와야 했다.
우리 회사는 일찍 갔다 오는 분위기였고,
나는 자리가 남는 가장 빠른 일정으로 6월에 다녀왔다.

당시 훈련소는 코로나 이슈가 산재해 있었다.
4월에 다녀온 팀원은 2주간 샤워는커녕 양치질도 마음대로 못 했고,
손도 못 씻게 해 물티슈와 손 세정제 이후 식사를 했다고 했다.

다행히 5월에 훈련소 배식과 함께 이 문제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고,
그래도 6월은 다르지 않겠냐며 걱정 아닌 걱정을 했던 것 같다.

6월의 훈련소는 다행히 하루 한 번 샤워를 시켜줬고,
화장실은 자유, 하루 2회 세면과 양치질을 할 시간도 줬다.

달라지지 않은 것은 10일 격리 기간 동안 아무것도 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기들은 둘째 날부터 말을 트고 친해지기 시작했고,
숫자 야구, 마피아 게임, 오목 별별 것을 다 하며 시간을 보낸 것 같다.

10일이 지난 시점부터 매일같이 훈련이 시작되었다.
초여름인 만큼 기온은 높아져만 갔고,
구름 한 점 없는 운동장을 기어 다녔다.

첫 10일은 시간이 안 갔는데, 이후 10일은 훈련만 하고 오면 피곤해 잠만 자기를 반복했다.

3주가 지나고 느낀 점은 훈련보다는 인간관계가 피곤했던 것 같다.
정말 밖에서는 못 봤던 다양한 사람을 만났고, 많은 사회 현상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한 번은 가도 두 번은 못 간다.


9월
혼자 부산 여행

나는 달을 주기로 텐션이 올라갔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월말이 되면 월간 목표 설립과 회고 과정에서 텐션이 떨어졌고,
중순이 되면 실험 결과에 대한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이는 감정적으로 굉장히 피곤했고, 달에 한 번 정도 리프레시를 위한 여행을 다녔다.

9월은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기획해 다녀오기로 했다.
나는 바다를 그냥 멍하니 보기만 해도 좋아 대부분 바닷가로 여행을 다녔고,
혼자 가는 만큼 부담 없이 자주 가본 부산을 다녀오기로 했다.

21.10.01.해목

21.10.01.해목

비행기를 타고 도착해 첫날 점심은 해운대 해목에서 장어덮밥을 먹었다.
운이 좋게 브레이크 타임 15분 전에 도착했고,
예전 그 맛 그대로의 덮밥에 만족스러운 한 끼를 가졌다.

21.10.01.신라 호텔

21.10.01.신라 호텔

호텔은 오션뷰가 있는 신라 호텔로 예약했다.
점심을 먹고 들어선 호텔에 누워 저녁을 고민했다.

원래는 보리문디라는 이자카야에서 회와 술을 마시는 게 목표였는데,
아쉽게도 당일 예약이 되지 않아 이자카야 나카요시라는 곳에서 모둠회를 시켜 먹었다.

21.10.01.나카요시

21.10.01.나카요시

급하게 찾았지만, 만족도는 굉장히 높았다.
회 종류도 엄청 많았고, 굉장히 신선했다.
부산에 왔으니 대선 소주를 먹어야 한다며 한 병 놓고 혼자서 잘 먹은 것 같다.

당시에는 행복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매니징을 시작하면서 연구에 집중할 수 없는 환경이 계속됐고,
매니저와 연구원 사이 R&R의 모호함, 더 이상 재미를 찾기 힘든 업무 환경에
이젠 퇴근 후에 취미를 찾자, 나는 무엇을 좋아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렇게 기획한 여행이었고, 그냥 간단히 파도 소리가 좋아서 부산으로 향했다.

21.10.01.해운대

21.10.01.해운대

해운대는 그런 배경에서 너무나도 만족스러운 공간이었다.
업무에서 멀어지고 자신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10월 비전팀 신설과 신입 사원 채용이 확정된 상황에서,
더 많은 매니징 리소스를 요구할 것이고, 연구원으로의 나는 잠시 멈출 것이란걸 알았기에
마지막 위안이라 생각하고 잠이 들었던 것 같다.

21.10.02.광안리 키쉬미뇽, 톤쇼우

21.10.02.광안리 키쉬미뇽, 톤쇼우

둘째 날은 광안리를 찾았다.
키쉬미뇽에서 커피도 마시고, 톤쇼우에서 돈카츠도 먹었다.
후회하지 않을 만큼 보자고 해서 2시간 가까이 바다만 걸어 다닌 것 같다.

많이 여행 다녔지만, 9월 말의 여행을 잊을 수 없다.


10월
라로 - 첫 주니어 온보딩

회사에 동영상 합성에 대한 니즈가 지속되면서 비전팀 신설을 고려하고 있었다.
그에 따라 음성, 영상 상관 없이 주니어 딥러닝 연구원을 채용하기로 했고,
9월에 산업기능요원 채용을 진행했다.

그렇게 채용 인원이 확정된 후, 아쉽지만도 모두 비전팀을 희망하여
비전팀장 채용, 비전팀 임시 운영체계 확립, 주니어 온보딩이라는
막대한 매니징 리소스를 감당하게 되었다.

그중 가장 부담으로 다가온 것은 주니어 온보딩이었다.
당시에는 내가 음성팀장으로 남고, 비전팀장을 따로 뽑는 분위기였기에,
비전팀장 채용은 인사팀장님이 도와주실 것이고, 임시 운영은 음성 연구팀 하던 데로 하면 됐다.

이전까지는 경력직을 뽑기도 했고, 온보딩 없이 알아서 하는 분위기가 컸기에,
온보딩에 대한 필요성이나 교육 계획이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급하게 딥러닝 연구원으로 있는 다른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어떤 온보딩이 이뤄지고 있는지 레퍼런스가 필요했다.

여러 이야기를 참고하여
논문 리뷰 기간, 토이 프로젝트 기간, 실제 배포 기간의 총 3개 정도의 경험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다.

논문 리뷰는 하루에 토픽을 하나 정하고, 논문을 골라 리뷰한 후 공유하는 방식이었다.
반응은 굉장히 좋았다.
이른 시간 안에 여러 토픽을 훑고, 학계의 전반적인 흐름을 공유한다는 것에 공감받을 수 있었다.

문제는 토이 프로젝트였다.
현재 회사는 통합 음성 연구 개발 환경을 구축해서 활용 중인데,
주니어 온보딩 프로젝트로 비전 연구 개발 환경을 구축하자고 했다가
난이도 조절 실패로 많은 원망을 들었다.

그래도 주니어분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셔서
프로젝트는 1차적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었고, 현재도 이를 잘 활용하고 있다.

온보딩이 끝난 후, 실제 연구부터 배포에 투입되어 현재도 잘 업무를 수행해 주시고 있다.
개인적으로 온보딩은 난이도 조절을 제외하면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주니어를 채용하여 1달에 업무 투입까지 올 수 있었던건
개개인 모두의 노력과 나름의 온보딩 프로세스 덕이 아니었나 싶다.

라로 - 비전팀 신설

비전팀 온보딩의 1달 동안 비전 연구팀장을 채용하지 못했다.
비전 연구팀은 좌초될 것 같았고, 또다시 주니어들이 바닥에 나앉을 것 같았다.

오랜 고민이 필요했다.
스피치팀 운영을 넘어 비전팀까지 내가 매니징할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고,
연구에 손을 떼야 하는 상황이 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처음 연구팀장을 했던 이유가 생각이 났고, 결국 단일 연구팀을 운영하기로 했다.
나는 얼떨결에 7명의 팀원이 생겼고, 이젠 거의 PM에 가까운 R&R을 가지고 있다.

비전팀 운영 초기에는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았다.

내가 전문으로 하지 않는 분야의 매니징을 해야 했고,
최대한 따라가기 위해서는 시간을 쪼개 영상 논문을 리뷰해야 했다.
피로감은 쌓여갔고, 결국 11월에 번아웃이 찾아왔다.

그래도 생각보다 주니어부터 미들까지의 모든 팀원이 잘 따라줬다.
실험 계획이나 방향성 공유도 충분히 이뤄졌고,
점점 태스크에 능숙해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가끔 실험 관리 부족으로 태스크에 지연이 생기거나,
연구 부채가 쌓인 실험을 보여주곤 하지만 이는 해결 가능한 문제로 보고 있다.

근래에는 오히려 나를 걱정해주는 것 같아 괜히 헛헛해지기도 한다.


간혹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
공격적인 피드백은 꼭 필요하고, 이를 수용하지 못하면 무난하게 침몰하는 배가 될 수 있다고 말이다.

나는 이 말에 반은 수긍한다.
특히 리더 그룹 내에서의 방향성 설정과 정렬은 필수적이고, 모든 판단이 치명적일 수 있기에
피드백을 통해 빠른 수정이 요구될 수 있고, 때론 이 과정이 공격적일 수 있다.

하지만 반은 수긍하지 못한다.
모든 사람이 해당 피드백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toxic한 개발자의 말투가 오랜 논점이 된 것에는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사람에 따라 공격적이지 않게 피드백하더라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고,
공격적인 피드백은 단지 빨라 보이는 길일 뿐이다.

나는 이를 잘 조절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외부에선 경쟁이 있더라도 내부에선 협업이 있었으면 좋겠다.
목표는 높게 잡되, 중간중간 만족할 수 있는 지점을 만들고
이를 통해 독해지지 않아도 될 동기가 충분했으면 좋겠다.

물론 이 과정에는 외부의 경쟁을 이길 만큼의 성과가 필요함을 알고 있다.
이는 독해져야만 가능한 것이 아님을, 독해지지 않아도 가능하단 걸 보이고 싶다.

그게 내가 팀장으로 남고 싶은 모습이다.


11월
라로 - 이사

내가 처음 본 라로의 모습은 19년 7월 학교 기숙사에 있던 3인의 창업 동아리였다.
그러다 20년 초 7명 정도의 초기 멤버와 함께 을지로의 공유 사무실로 이사를 왔다.

직원은 21년을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제 직원 수는 30명이 넘어갔고, 코로나로 직장 내 인원수 제한에 추가 공유 사무실을 임대해야 했다.

21.10.25.라이언로켓 사무실

21.10.25.라이언로켓 사무실

21년 10월 말 드디어 회사는 공유 사무실을 벗어나, 한층 전체를 임대하는 전용 공간을 얻었다.

21년 4월을 기점으로 회사에 좋은 감정도 많이 생기고,
적대감도 많이 줄어들다가 사무실까지 생기니 여러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4명이었던 회사가 30명이 넘어가고, 기숙사에서 시작하여 전용 공간이 생겼다.
팀원 7명을 책임지는 팀장이 되었고, 연구도 틈틈이 진행하며 기술에도 기여하고 있다.

내 기여점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같이 만들어간다는 것이 마냥 사기꾼의 단어는 아니구나 싶었다.
좋은 경험이든 싫은 경험이든 결국 스타트업이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맥주 일기

이사도 오고, 비전팀도 신설되었다.
본격적인 통합 연구팀이 운영되며 매니징에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고,
근래에는 연구 태스크까지 추가되며 과중한 업무에 결국 11월 번아웃이 찾아왔다.

집에 도착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저 자다 깨다 자다 깨면 아침이 밝아 왔다.

무언가 긴장을 이완할 취미를 찾아보고 싶었다.
7월에는 기타를 쳤었지만, 새로 배운다는 부담감에 2달 정도 치고 잠시 내려두었다.

배워서 하지 않아도 좋고, 충분히 부담 없이 편하게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다가
편의점 맥주가 눈에 들어왔다.

맥주로 무얼 할까 생각하다가, 맥주를 마시고 일기를 남겨보기로 했다.
맥주에 크게 관심이 있던 것이 아닌지라 맛 표현을 어떻게 해야 할지부터가 난관이었다.

21.11. 맥주 일기

21.11. 맥주 일기

20개 정도를 기록하다 보니 몇 가지 표현이 정리되었다.
탄산감이나 청량함이 어떤지, 목 넘김은 어떤지, 향이 추가된 맥주인지, 쓴맛은 어떤지 정도가 있다.

그리고 내 기호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나는 호가든이나 블랑처럼 향이 추가된 벨기에식 맥주나,
파울러나 에딩거처럼 적당한 쓴맛과 곡물 향이 섞인 독일식 밀맥주를 좋아한다.

실제로 번아웃에 도움이 되었다.
퇴근 후에 업무에 대한 고민 없이 오늘은 어떤 맥주를 마셔볼까 하는 설렘도 도움이 되었고,
내가 뭘 좋아하는지 찾는 과정도 좋았다.
농담 삼아 주류가 가진 이완의 힘도 있었던 것 같다.

요즘도 종종 마시면 일기를 남기고 있다.
아무래도 주류인 만큼 자주 마시거나 주기적으로 마시는 것 보다는
마실 때마다 남기는 편이다.

일기는 공개되어 있지만, 따로 링크를 남기지는 않는다.


12월
크리스마스

12월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좋은 사람을 만나 좋은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왔다.

추운 날 목도리를 매고, 대학로의 극장을 찾았다.

21.12.24. 쉬어매드니스

21.12.24. 쉬어매드니스

쉬어매드니스는 참여형 추리극으로 관객이 사건을 보고 투표를 통해 범인을 밝혀나간다.
앞은 조금 지루할 수 있지만, 관객 참여가 시작되면 분위기가 바뀐다.
생각보다 관객 참여도 굉장히 좋았다.
나는 알리바이가 나온 배우님께 잘 들어가시라고 인사했다가 2층 인사남으로 찍히기도 했다.

호텔은 명동으로 예약했고, 저녁은 매드포갈릭에서 먹었다.

21.12.24. 칭찬왕 와인

21.12.24. 칭찬왕 와인

23일인 이브 전날 회사에서 farewell 파티가 있었는데,
이때 칭찬왕 선발대회의 2등으로 뽑혀 부상으로 샴페인을 받았었다.

저녁을 먹고 돌아와 마신 와인도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21.12.25. 조식

21.12.25. 조식

아침은 조식을 먹으러 갔다.
코로나 여파로 뷔페식보다는 준비된 요리가 나왔고,
아메리칸 브랙퍼스트라는 이름에 맞게 적당한 식사가 나왔다.

올해는 감정적으로 굉장히 유동적이었던 만큼,
9월의 여행과 크리스마스의 휴식이 더 달콤했던 것 같다.


많은 일이 있던 21년도였다.
코로나로 비대면 생활이 이어지면서 20년도, 21년도의 경계가 모호했다고 느꼈다.

하지만 이렇게 정리해보고 나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나는 20년도와 21년도에 다른 사람이었고, 내년에 또 다른 사람일 것 같다.
무조건 긍정적으로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 후회도 여전히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내년엔 그저 좀 더 마음 편하게 먹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더 만족하며 살아야겠다.